31주차 임신부 이모(30ㆍ서울 마포)씨는 27~36주 사이에 백일해 백신을 맞아야 하지만, 일주일째 대기 중이다.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에선 “일단 급한 산모들부터 접종하고 있어 기다려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씨는 “몸이 더 무거워질까 걱정이 된다”며 “지인이 주변 내과에서 접종을 받았다기에 그쪽에 문의를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백일해 백신은 크게 영유아가 접종하는 DTaP(디탭, 디프테리아ㆍ파상풍ㆍ백일해 예방 백신)과 청소년 및 성인용 Tdap(티댑, 파상풍ㆍ디프테리아ㆍ백일해 예방 백신)이 있다. 품귀 현상이 발생한 건 후자인 티댑이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백신 제약사 두 곳(GSKㆍ사노피파스퇴르)에서 공급 차질이 빚어지면서다.
실제 질병청의 ‘월별 Tdap 백신 공급량과 접종량’ 자료에 따르면 티댑 백신은 지난 7월 19만9784만명분이 들어온 후 9월까지 추가 물량이 들어오지 않았다. 7월 이전 이월된 물량과 더하면 총 24만여명분으로 같은 기간 접종량인 23만여명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이었다. 한 달간 고비를 넘기고 10월에는 35만5000여명분이, 11월에는 2만5000여명분의 백신이 추가로 들어왔다. 숫자로만 보면 10~11월 접종 예상치인 17만3000여명의 2배 되는 물량이었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유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내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GSK는 1년째 들어오지 않고 있고, 사노피는 가끔가다 10명 정도 분량이 들어오는데 그것도 일주일이면 후다닥 나간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내과에서는 “유통사 쪽에서도 양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우리가 요구하는 만큼 물량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은 내과나 가정의학과를 중심으로 공급 지연이 일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백일해 백신은 독감처럼 정부가 사전에 물량을 구입해 제공하는 ‘사전 현물공급’ 방식이 아니라 각 의원에서 개별적으로 구매해 공급을 받는 상황이라 유통 과정에 일일이 개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독감 백신처럼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백일해 백신 역시 ‘사전 현물공급’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질병청은 “독감과 같이 시급을 따지거나 수요가 많은 백신이 아니기 때문에 의료기관들과 협의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전 현물공급보다는 비상상황에 대비하는 의미로 백신을 일정량 비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성관 우리아이들병원 이사장은 “소아·청소년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질병을 예방하는데 백신이 가장 필요하다. 코로나나 독감 백신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아이들에 대한 백신도 그만큼 공급이 원활하게 질병청에서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말했다.